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양국의 수출통제로 인해 우리 기업의 공급망이 막힐 우려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의 기술과 소프트웨어까지도 통제대상이 되고 있어,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최근 펴낸 ‘트럼프 2기, 미국과 중국의 수출통제에 따른 우리 기업의 공급망 리스크 인식과 시사점’ 보고서는,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술 제재를 위해 수출통제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미국 기술·장비·소프트웨어가 일정비율 이상 포함된 제3국 제품에 대해서도 통제권을 확대”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 기업들도 미국 수출통제 규정을 준수해야 하며, 대중 수출 또는 거래 시 미국의 사전 허가 또는 실사 요구에 직면할 수 있는 리스크”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특히 “UAE, 남아공, 파키스탄 등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도 통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 취급 품목의 거래처뿐 아니라 최종 목적지와 최종 사용처까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24년 말 미국은 중국 군 현대화 관련 140개 기업을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하고, 한국 기업 2곳을 포함한 일본, 싱가포르 등 다국적기업의 첨단 반도체 및 관련 수출을 금지한 상황이다.
이에 맞서 중국 역시 핵심 광물의 수출통제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특히 한국은 텅스텐, 희토류 등 일부 핵심광물의 대중국 수입의존도는 80%를 웃돌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보고서는 “중국의 수출통제는 ‘수출금지’가 아니므로, 한국으로의 원자재 수출이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핵심 광물 수출을 불허할 권한을 전적으로 보유하므로 ‘수출 허가증 발급’과 관련한 리스크는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미중 양국에 수출하는 기업이 미국의 대중국 제재에 동참할 경우, 중국으로부터 법적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사전 대비도 필요”한 상황이다.
70% 이상이 中 수출통제에, 80% 이상이 美 수출제재에 ‘영향’
우리 기업들은 이미 중국과 미국의 수출통제로 인한 영향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무역협회가 2024년 50만 달러 이상 수출 실적이 있는 국내 제조기업 740개사를 대상으로 2월 하순부터 3월 초순 사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미국의 무역제재로 인한 공급망 위기 심각성을 우려한 기업은 79.6%에 이른다. 이는 중국의 핵심 광물 수출통제로 인한 위기 심각성(42.5%)보다 약 2배 높은 수준이다. 공급망 조정 필요성도 미국 제재(66%) 원인이 중국 광물통제(30%)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보고서는 “기업들이 중국의 광물통제 조치를 국지적 리스크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미국의 무역제재는 공급망 전반을 흔드는 핵심 변수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응답 기업의 83.1%가 미국의 무역제재로 인해 공급망 피해가 발생했거나 예상된다고 답했으며, 가장 피해가 예상되는 부분은 미국시장 내 수출경쟁력 약화(45.4%)였다. 중국의 수출통제에 따른 공급망 피해와 영향을 예상한 기업 역시 73%에 달했고, 제품 생산비용 증가(45.6%)를 가장 우려했다.
그러나 공급망 위기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대책이 없다는 기업이 전체의 절반을 넘은 51.8%에 달했다. 검토중인 기업은 45.8%였고, 대책수립을 완료했다는 기업은 2.4%에 불과했다.
유형별로는 단일 조달처에 의존하는 기업의 대응이 조달처를 다변화한 기업에 비해 취약했다. 단일 조달처에 의존하는 기업 중에는 공급망 대책이 없거나 미수립한 기업 비율이 60.4%에 이른다. 반면 2개 조달처(56.1%)나 3개 조달처 이상(49.3%)인 기업들은 공급망 대책이 없거나 미수립한 비중이 다소 낮았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조달처 다변화’가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과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공급망 불확실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핵심전략임을 시사”한다고 풀이했다.
기업들 역시 공급망 위기 극복을 위한 주요 대응책(복수응답)으로 수급처 다변화(64.7%)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있었다. 이 밖에 공급망 관련 모니터링 강화(42.6%), 대체수급처 발굴(24.1%), 자체 생산역량 강화(21.6%) 등의 조치를 취한 기업이 많았다.
기업이 희망하는 정부지원 대책(복수응답)으로는 금융지원 확대(60%)가 1순위였다. 수급처 다변화 지원책(42.3%)에 대한 요구도 높았다.
공급망 다변화부터 정책금융, 기업 보호장치까지 정부과제 산적
보고서는 이같은 조사결과를 근거로, 조달처와 수출처를 포함한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속가능한 수출처 공급망 확보를 위해 인도, 인도네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로의 진출 가속화 등 시장 다변화 노력과 수출처 이원화 전략 추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도나 중동 등 유망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를 중심으로 신규 유망시장 진출을 늘리고, 미국 수출시장과 기타 수출시장을 구분하는 수출 이원화 방식을 통해 미국 진출 중점 품목의 경우 공급망 리스크 제거를 위한 중국산 원자재를 축소 또는 제외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미중 제재 충돌에 대응한 기업 보호장치를 정부가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미중 양국의 수출통제로 상호 충돌하는 역외 법률이 작동할 가능성이 있으며, 기업 차원에서 양국의 규제를 판단해 대응하기에는 법적 리스크가 큰 상황에 놓여있다.
보고서는 우리 기업의 법적 리스크 완화를 위해 기업 보호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EU 등 주요국 유사 사례를 벤치마킹해 산업 안보 및 기업의 자율성 보장을 위한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EU는 EU 기업이 다른 나라로부터 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구받을 경우 이를 EU 집행위에 보고하도록 신고의무를 두고 있다. 또 EU 기업은 제3국 역외제재를 따르는 행위를 금지하고, 역외제재 관련 제3국 판결은 EU에 법적 효력이 없다는 제도를 두고 있다. 역외제재로 인해 손해를 볼 경우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
보고서는 또 공급망 리스크에 취약한 중소 기술기업과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투자세액공제 직접 환급제도 도입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의 세액공제는 세금 납부액이 있어야 적용 가능해, 적자기업과 초기 투자기업은 혜택을 받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대규모 선제적 투자를 진행하는 기업은 손익이 악화되는 구조로 세액공제 체감 효과가 낮다”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 주요 국가들은 중소기업 및 첨단기술 기반 기업의 선제적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직접 환급형 세액공제를 폭넓게 도입한 상황이라고 소개했다.
따라서 “우리도 첨단기술 기업 및 민간 기업에게 적극적인 투자 유인과 기술자립 지원을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제도 개편이 필요”하며, “국가첨단전략산업법 내 특례 적용조항을 활용해 첨단 전략산업의 R&D 및 인프라 투자에 대해 고율 세액공제 확대와 직접 환급 도입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