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시장에서 단기매매 중심의 투자행태가 지속되면서, 기업의 장기전략 수립이 어려워지고 시장 안정성도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의결권·세제·지배구조 전반의 장기보유 인센티브를 설계할 필요성도 나온다.
상장회사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주주의 장기보유를 위한 제도연구’에서, 최승재 세종대학교 교수는 한국 개인투자자의 보유기간이 글로벌 평균 대비 매우 짧다는 점을 지적한다.
월드뱅크 통계에 따르면, 한국 개인주주의 평균 주식 보유기간은 약 3~6개월로 조사됐다. 특히 2020년 이후 개인투자자 유입이 폭증하면서 평균 주식 보유기간이 코스피 2.7개월, 코스닥 1.1개월까지 단축되는 등 단기매매가 더욱 확대되는 상황이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주식시장 회전율은 200.8로 미국(68.5)의 약 3배, 일본(117.0)의 1.7배에 달한다. 회전율은 일정 기간 거래된 주식 수를 전체 상장주식 수로 나눈 비율을 말한다.

보고서는 우리 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단기보유 행태는 투자자의 과잉확신, 시장수익률 추종, 복권형 저가·고변동성 주식 선호, 정보 및 자극 추구 성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와 같은 개인투자자의 단기보유 성향은 분산투자·장기보유에 비해 위험이 높고, 효율성이 떨어진다. 보고서는 단기주의의 구체적 폐해로 ▲경영진의 단기 성과주의 심화로 인한 R&D 투자 급감과 제조업 경쟁력 약화 ▲개인투자자의 군집행동으로 인한 시장 효율성 훼손 ▲경영진·주주 간 신뢰관계 붕괴 등을 꼽았다.
장기보유 주주에 의결권 더 주는 ‘테뉴어 보팅’ 도입 필요
최 교수는 프랑스와 미국 사례를 토대로, 장기투자자에게 의결권을 더 부여하는 테뉴어 보팅(Tenure Voting) 제도가 한국에도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프랑스는 플로랑주 법을 통해 2년 이상 보유한 주주에게 1주당 2개의 의결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는 경영권 보호와 장기투자 문화 정착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테뉴어 보팅의 장점으로는 단기투기 자본의 영향력 제어, 장기전략 중심의 책임경영 강화 등이 꼽힌다. 보고서는 테뉴어 보팅이 한국에서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며, 보유기간에 의결권을 차등 부여하는 방식이 기업가치와 국가경제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유익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1주 1의결권 원칙과 주주평등주의와의 충돌, 복수의결권주식 인정 문제 등 제도적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장기보유자 선택권 중심으로 재설계를
보고서는 장기보유 주주에게 배당소득 분리과세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현재 배당소득은 원천징수세율 14%(지방소득세 별도)로 분리과세 되지만, 이자·배당소득 합산액이 2,000만원 초과 시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으로 최대 45%(지방소득세 별도)의 누진세율이 적용된다.
다만, 정부의 2025 세제개편안에서는 고배당 상장회사(배당성향 40%↑등) 배당에 대해 분리과세를 허용(최고 35%)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보고서는 기업의 ‘배당성향’이 아닌 ‘주주의 보유기간’을 기준으로 분리과세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보유기간이 길수록(2년, 5년, 10년) 세율을 낮추는 방안을 제안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배당소득세 관련 정부안과 의원입법안의 경우, 모두 ‘배당성향’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나, 배당성향은 기업의 성장단계, 현금흐름, 투자기회 등 기업 내부 여건과 경영진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변수인 데다, 일정 수준을 초과하는 고배당은 오히려 기업가치를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적합한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주식 장기 보유하면 양도소득세 감면 필요…구간차등 제안
보고서는 세제 측면에서는 부동산과 달리 주식 장기보유에 대한 세제 혜택이 미비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보유기간에 따른 양도소득세 차등화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내 주식 양도소득에 대해 ▲3년 이상 보유 시 세액의 3% ▲5년 이상 보유 시 7% ▲10년 이상 보유 시 10%를 공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다만 현재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이 무산된 상황에서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통한 단계적 접근이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양도소득세 과세대상 기준을 50억에서 10억원으로 낮추려는 정부안은 정치적 반발이 크며 현행 유지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기존 복수의결권 제도가 벤처기업 창업주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장기보유와 연계한 복수의결권 설계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창업주가 보유한 보통주를 복수의결권주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를 유예하는 제도는 이미 마련돼 있어 해당 논의가 확장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한국 자본시장의 단기주의 문제는 어느 하나의 정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테뉴어 보팅 도입을 비롯해 장기보유 주주에게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허용하는 방안, 보유기간에 따른 양도소득세 공제 확대, 복수의결권 제도 개선 등이 함께 추진될 때 비로소 장기투자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기업이 중장기 전략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자본시장 전체의 신뢰와 안정성 또한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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