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보험산업이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와 내수시장 포화라는 이중의 압박에 직면하면서, 보험회사들이 해외시장 진출과 국경 간 인수합병(M&A)을 핵심 성장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과거에는 소수 지분 투자나 특정 보험 플랫폼 확보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장기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대규모 전략적 M&A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보험연구원(KIRI)이 최근 발표한 ‘보험회사의 국경 간 M&A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보험산업의 수입보험료 성장률은 1990년대까지 경제성장률을 크게 웃돌았으나,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경제성장률과 유사하거나 소폭 상회하는 수준으로 둔화됐다. 성장의 무게중심이 내수에 머물러 있는 한 구조적인 성장 한계를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확산되면서, 보험사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규모 전략적 M&A로 방향 전환하는 국내 보험사
최근 국내 보험사의 해외 진출전략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M&A 규모와 방식이다. 과거에는 재무적 투자 성격이 강한 소수 지분 인수가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경영권을 확보하는 전략적 인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DB손해보험이다. DB손보는 2025년 미국 특화보험사 포테그라(Fortegra Group)를 약 2조3000억원에 인수하며 미국과 유럽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이는 국내 보험회사가 미국 보험회사를 100% 인수한 최초 사례이자, 국내 보험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 M&A로 기록됐다.
포테그라는 미국 전역은 물론 영국·이탈리아 등 유럽 8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2024년 기준 순보험료 중 유럽 비중이 11.3%에 달하는 글로벌 사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삼성화재 역시 영국 로이즈 시장의 보험사 캐노피우스를 단계적으로 인수하며 해외 손해보험 사업을 확대해 왔다.
이 밖에도 국내 손해보험사들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시장을 중심으로 지분 인수와 현지 보험사 편입을 추진하며 성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생명보험사들의 해외 진출은 손보사와 다소 결이 다르다. 삼성생명은 영국과 프랑스의 자산운용사를 잇달아 인수하며 자산운용 역량 강화에 집중했고, 한화생명은 미국 금융사와 인도네시아 은행 지분을 확보하며 금융투자와 판매 채널 다각화를 병행하고 있다.
일본·유럽 보험회사는 이미 해외 수익 기반 안착
보험연구원은 국내 보험사의 이러한 움직임이 방향성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일본과 유럽의 주요 보험사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가 크다고 평가했다.
일본 보험사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국경 간 대형 M&A를 통해 글로벌 보험 플랫폼 구축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 왔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일본 주요 보험사들의 해외 투자 규모는 약 30조6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국내 보험사의 해외 투자액의 약 8배에 달한다. Tokio Marine, MS&AD, Sompo 등 일본 3대 손해보험사의 경우 적극적인 M&A를 통해 해외 부문 매출과 이익 비중이 전체의 30%를 넘어서며 내수시장 성장 둔화를 효과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유럽 보험사들 역시 국경 간 M&A를 성장 전략의 핵심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프랑스 AXA는 2018년 XL그룹을 인수하며 글로벌 상업보험과 재보험 부문을 강화했고, 독일 Allianz와 스위스 Zurich Insurance도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이들 보험사는 일회성 외형 확대보다는 수익 구조의 지역적 분산과 안정성 제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유럽 보험사들은 보험회사가 직면한 다양한 리스크를 정량적으로 반영해 자본 요건을 부과하는 SolvencyⅡ 체제하에서 자본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리스크 분산과 자본 효율성 제고 수단으로 국경 간 M&A를 적극 활용해 왔다. 해외 사업 확대가 단순한 성장 전략을 넘어, 규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경영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경영진 임기, 자금 조달 규제…국내 보험사의 과제”
보고서는 국내 보험사가 글로벌 보험사들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로 경영진 임기 안정성과 제도적 환경을 꼽았다.
일본과 유럽의 주요 보험사들은 장기 재임이 가능한 최고경영자(CEO) 체제를 통해 해외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지만, 국내 보험사 CEO의 평균 재임 기간은 2~4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장기적 성과가 필요한 해외 M&A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아울러 해외 M&A를 전담하는 조직과 인력의 상시 운영 여부도 중요한 차이로 지목됐다. 글로벌 보험사들은 지역별 M&A 전담 조직을 두고 인수 대상 발굴부터 인수 후 통합(PMI)까지를 하나의 지속적 프로세스로 관리하는 반면, 국내 보험사는 여전히 단발성 거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자금 조달 측면에서 제약도 과제라고 했다. 일본과 유럽 보험사들은 해외 인수과정에서 후순위채 발행 등을 활용해 자본 부담을 분산하는 반면, 국내 보험사는 채권 발행 목적에 대한 규제가 엄격해 해외 진출과 M&A에 필요한 중장기 자금 조달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주장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문제영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경 간 M&A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기업 차원의 경영·조직체계 정비와 금융당국의 정책적 지원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