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은 회사업무 감독책임 있어…이사회에 한번도 참여하지 않은 이사의 책임

 

지난해 12월 초는 삼성, SK, GS 그룹 등 대기업의 임원 정기인사가 집중되는 시기였다. 이 시기가 되면, 임원이라는 별을 달기 직전에 있는 사원들은 숨을 죽여가며 촉각을 곤두세운다. 임원이 되는 것은 권한도 있지만 그만큼 책임도 따른다.

과거에는 회사의 오너가 경영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요즘에는 확연히 체감되게 임원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최근 몇 년간 주식회사 임원의 의무 위반과 그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에 대한 판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사와 감사로 법인에 등재가 되어 있지만, 사실상 이사와 감사의 역할을 하지 않은 자들은 어떤 의무와 책임이 있을까? 실제로 회사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임원들과 같은 수준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 의미 있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소개한다. A와 B는 상장회사 C법인의 이사와 감사로 각각 근무했다. 상장회사 C법인은 A와 B의 그 근무기간 동안 한 번도 이들에게 이사회를 위한 소집통지를 한 적도 없었고, 실제로 이사회를 개최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이 C법인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외부 감사인을 둬야 하는 회사였고, 감사 업무도 B감사가 아닌 외부감사인을 통해 이뤄졌다.

 

문제는 C법인의 대표자와 실제 경영자가 범죄를 저지르면서 발생했다. C법인은 회사의 자산과 매출액에 비해 거액의 유상증자를 했고, 법인의 실제 경영자와 대표이사는 이 유상증자 대금을 횡령한 혐의로 형사 유죄판결을 받았다. 결국, C법인은 상장폐지되고 말았다.

그런데 C법인은 거액의 유상증자 안건을 이사회에서 결의한 것으로 회의록을 작성하고 그 내용을 공시까지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사 A와 감사 B는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가 큰 손실을 보고 상장폐지까지 되었기 때문에, A와 B를 상대로 상법 제399조, 제414조에 규정된 이사와 감사의 임무 위반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소송이 제기됐다. 과연 위와 같이 실제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은 이사 A와 감사 B는 상법상의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먼저, 이사 A는 C법인이 자신에게 이사회 소집통지를 하지 않았고, 자신이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은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을 했다. 감사 B의 경우 C법인은 외부감사를 받는 회사이고, 외부감사인이 있으므로 마찬가지로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에 대해 고등법원에서는 이사 A와 감사 B에게 이사·감사로서 법령·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했다고 보지 않았다. 또한, A와 B의 행위만으로는 C회사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즉 이사와 감사의 책임 모두를 부정한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의 견해는 달랐다. 대법원은 C회사가 상장회사로서 이사회를 통해 주주총회 소집, 재무제표 승인을 비롯해 대표이사 등이 횡령한 유상증자 대금과 관련된 유상증자 안건까지 결의한 것으로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하고, 그와 같은 내용을 계속해 공시했는데도, 이사와 감사가 수년간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특히 위 유상증자 대금은 자산과 매출액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규모가 매우 큰데도 이사 A와 감사 B가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면서, A와 B는 C회사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B의 감사 업무와 관련해서도 회계감사에 관한 상법상의 감사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상의 감사인에 의한 감사는 일부 중복되는 면이 있지만 서로 독립적이라고 보았다. 즉 외부감사인에 의한 감사가 있다고 해서 상법상 감사의 감사의무가 면제되거나 경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이사 A와 감사 B는 이름만 빌려주었다가 억울하게 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말 명의만 빌려주었다고 해도, 상법상 임원이 져야 할 책임을 질 수 있다. 실제로 업무상 친구의 부탁으로 회사의 대표이사 혹은 이사로 등재됐다가 낭패를 보는 일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 경우 민사상 책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형사상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나는 단순히 명의를 빌려준 것뿐이고, 상법상의 책임까지 져야 하는지는 모른다’고 항변하지만 이미 늦었다. 물론 앞서 설명한 대법원 판결은 ‘상장회사’와 관련된 판결이기 때문에, 영세한 회사에까지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회사의 규모에 따라 책임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원칙적으로 임원에게는 회사의 업무에 대한 감독책임이 있음을 명심하자.

글. 로펌 고우 고윤기 변호사 kohyg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