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휴가 촉진에도 직원 출근했는데]연차유급휴가제의 취지는 근로자에게 정신적·육체적 휴양을 제공해 노동재생산을 도모하는 한편, 문화적 생활을 보장함으로써 일·가정 양립을 위한 근로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연차유급휴가제 도입에도 한국은 여전히 최장시간 노동국가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정근로시간 이외 관행화된 연장근로가 장시간근로의 주범이지만, 연차유급휴가수당도 근로시간 단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미사용 연차에 대해 연차유급휴가수당(이하 연차수당)으로 보전하고, 연차휴가 대신 연차수당을 선호하는 근로자가 많아 연차휴가제의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1999년까지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차휴가 사용일수는 9일에도 미달해 법정기준 휴가일수의 40%에 불과했다. 이에 근로기준법 제61조는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를 규정해, 근로자의 연차휴가 사용을 촉진하는 한편 사용자에게는 연차수당 지급에 따른 부담을 덜어줬다.
연차휴가 사용촉진 의무 이행하면, 연차수당 지급의무 없어
따라서 사용자가 연차수당 지급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근기법 제61조가 정한 기한 및 절차에 따라 근로자에게 미사용 연차휴가일수를 통보하는 등의 연차휴가 사용촉진 의무를 이행해야한다.
노동상담을 하다보면, 연차휴가 사용촉진 방법의 적법성 여부와 함께 연차수당 지급을 둘러싼 노사간 다툼을 종종 접하게 된다. 최근 대법원은 연차휴가 사용촉진에도 불구하고 근로자가 연차휴가일에 출근해 근로를 제공한 경우, 사용자가 별다른 이의없이 노무제공을 수령했다면 연차수당을 지급해야한다는 판결을 내렸다(대법원 2020.2.27. 선고, 2019다279283).
◇사실관계=피고 회사(이하 피고)는 매년 1월1일~12월31일 사이 기간을 연차휴가 산정기간으로 정해 연차휴가를 부여한다.
피고는 2016년 연차휴가 사용기간의 말일(2016년 12월31일)부터 6개월 전(2016년 7월1일)을 기준으로 10일 이내인 2016년 7월6일 원고 근로자(이하 원고)에게 미사용 연차휴가일수가 21일이라고 통보하고, 휴가 사용시기를 정해 통보할 것을 서면으로 촉구했다(1차 사용촉진).
이에 원고는 2016년 7월8일 미사용 연차휴가일수 21일중 11일을 연차휴가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담은 서면을 피고에게 제출했다(1차 사용촉진에 따른 연차휴가 계획안:㉠2016.8.4. ㉡2016.8.24. ㉢2016.9.21. ㉣2016.9.28. ㉤2016.10.12. ㉥2016.10.26. ㉦2016.11.22. ㉧2016.11.29. ㉨2016.12.14. ㉩2016.12.29. ㉪2016.12.30.).
이후 원고는 2016년 11월24일 피고에게 다시 20일의 연차휴가를 사용하겠다는 내용이 기재된 연차휴가 사용 변경계획서를 제출했고, 피고는 이를 결재했다(2차 사용촉진에 따른 연차휴가 사용 변경계획안:①2016.11.25. ②2016.11.28. ③2016.11.29. ④2016.11.30. ⑤2016.12.1. ⑥2016.12.2. ⑦2016.12.5. ⑧2016.12.6. ⑨2016.12.7. ⑩2016.12.8. ⑪2016.12.9. ⑫2016.12.12. ⑬2016.12.13. ⑭2016.12.14. ⑮2016.12.15. ⑯2016.12.16. ⑰2016.12.19. ⑱2016.12.20. ⑲2016.12.21. ⑳2016.12.22.).
위와 같은 연차휴가 변경계획을 피고에 제출할 당시 원고는 2016년 11월30일부터 미국 출장이 예정돼 있었고, 실제 2016년 11월30일부터 2016년 12월5일까지 업무수행을 위해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또 원고는 ‘2차 사용촉진’에 따라 제출한 연차휴가 사용 변경계획안 중 ①2016.11.25. ③2016.11.29. ⑧2016.12.6. ⑳2016.12.22.에 출근해 근로를 제공했다.
◇원심=인천지방법원은 피고가 연차유급휴가 사용촉진을 적법하게 실시해, 원고에게 연차수당 지급 의무가 없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원심은 “피고가 연차휴가 사용을 독려하여 2016년 7월8일 원고로 하여금 연차휴가 사용계획을 제출하게 한 이상 구 근로기준법 제61조에서 정한 조치를 이행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연차휴가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인천지법 2019.9.26. 선고, 2018나66800).
대법, “연차 사용시기 정해 원고에게 서면통보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판단=원심에서 확정된 사실관계에 따르면, 피고의 ‘1차 사용촉진’에 따라 2016년 7월8일에 원고는 피고에게 연차휴가 11일의 사용계획만을 통보하고, 나머지 연차휴가 10일에 대해서는 사용계획을 통보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의 1차 사용촉진에 대해 “원고가 미사용 연차휴가 21일 중 10일의 사용시기를 정하여 통보하지 않았음에도 피고가 휴가사용 가능기간이 끝나기 2개월 전까지 휴가의 사용시기를 정하여 원고에게 서면으로 통보하였다는 사정이 보이지 아니”했다고 보고, “근로기준법 제61조에 따른 적법한 연차유급휴가 사용촉진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나머지 지정된 날짜에 대해 휴가를 사용하지 않은 것 역시 원고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른 것이었다고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 제61조에서 정한 미사용 연차휴가에 대한 보상의무가 면제되기 위한 요건을 충족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회사, 노무제공을 거부하지 않았다…연차수당 청구권 인정
아울러 재판부는 원고가 2016년 11월24일 피고의 ‘2차 사용촉진’에 따라 20일의 연차휴가를 사용하겠다는 내용이 기재된 연차휴가사용 변경계획서(①2016.11.25.~⑳2016.12.22.)를 제출했고, 피고가 이를 결재하기는 했으나 ▲당시 원고는 2016년 11월30일부터 미국 출장이 예정되어 있었고, 실제로 ④2016.11.30. ⑤2016.12.1. ⑥2016.12.2. ⑦2016.12.5.의 날짜에 미국 출장을 다녀왔던 점 ▲원고는 ①2016.11.25.~③2016.11.29. 및 ⑧2016.12.6.~⑳2016.12.22.의 날짜에도 정상적으로 출근해 근로를 제공했고, 피고도 별다른 이의없이 원고의 노무제공을 수령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위 연차휴가사용 변경계획서는 연차휴가수당의 지급을 면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작성된 것에 불과하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원고의 연차수당 청구권을 인정했다.
◇실무에서 판례의 활용=이번 판결을 통해 현장에서 빈번하게 이뤄지는 사용자의 임의적인 연차휴가 사용촉진은 그 적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많은 사용자들이 연차휴가 사용촉진을 위한 법정 시기 및 기한과 관계없이 “연차수당 안줄 테니 연차를 사용해라”는 말과 함께, 연차사용을 독촉하는 것으로써 연차유급휴가 사용촉진 의무를 이행했다고 오인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판례에서 지적했듯, 이는 명백하게 위법이다. 사용자는 연차휴가사용청구권이 소멸되는 날로부터 6개월 전에 미사용 연차휴가일수를 근로자 개인에게 통보하고, 통보일로부터 10일 이내에 연차휴가 사용시기를 정해 사용자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연차휴가 사용촉진 의무를 이행해야한다(1차 사용촉진). 그럼에도 근로자가 사용시기를 정해 통보하지 않은 경우 사용자가 사용시기를 정해 근로자에게 통보하는 ‘2차 사용촉진’ 의무를 이행해야만 적법하게 연차수당지급 의무를 피할 수 있다.
또한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61조는 당사자간 불명확한 조치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서면통보를 의무화했다. 다만 전자메일(e-mail)로 통보한 경우 근로자가 이를 수신해 내용을 알고 있다면, 유효한 통보로 볼 수 있다는 판례가 있다(대법원 2015.9.10. 선고, 2015두41401).
마지막으로 연차휴가 사용계획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가 출근해 근로를 제공할 경우 이를 방관해 근로를 제공받는다면, 이는 적법한 연차휴가 사용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따라서 명시적으로 노무수령 거부의사를 밝히고, 근로자에게 연차휴가 사용을 지시해야만 연차수당 지급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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