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게는 카드가 안 돼요.”
얼마 전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던 ‘서울페스타 2023’의 한 부스에서 들었던 말이다. 사실 이보다 더 난감한 말은 없다. 서울의 한 수산물 시장 안에 있던 분식집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을 때, 그 난감함과 당황스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현금’을 받지 않는 가게는 차선책으로 모바일 입금이라는 선택권을 소비자에게 준다. 카드를 거부하고 계좌이체나 현금을 강요하는 행위는 엄연히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사항으로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불법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업주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계좌이체는 젊은 층에는 익숙한 결제수단이지만, IT기술이 오히려 불편하다는 인식이 있는 노인들에게는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까지 가서 돈을 뽑은 후 다시 돌아와 물건을 구매해야 하는 이중고를 감내해야 한다. 카드를 주섬주섬 다시 지갑 안으로 넣는 손님에게 점포의 스태프는 “ATM기에서 돈을 출금해 다시 방문하는 어르신이 매우 많다”며, “며칠 뒤에 입금해도 괜찮으니 편하게 생각하라. 단, 입금 확인이 안 되면 연락할 수 있도록 전화번호만 주고 가라”고 ‘친절히’ 안내했다.
위 사례가 생소한 이유는 ‘지폐’가 없어도 되는 세상에서 ‘지폐’를 요구당했을 때의 이질감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지갑 안에 ‘현금’을 들고 다닌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생각해 보니 지갑을 없앤 지가 꽤 됐다. 카드지갑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외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현금’은 필요가 없어진 지 꽤 됐다. 도로에는 ‘이 버스는 현금 없는 버스입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버스를 볼 수 있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올 4월 기준, 109개 노선에 1824대가 현금 없는 버스로 운행 중이다. 이는 서울 버스의 약 25%에 해당한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경기도, 인천시, 대전시 등 일부 지자체들도 ‘현금 없는 버스’를 확대하고 있다. 지하철 역시 마찬가지다. 카드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에 더 익숙해진 지 오래됐고, 고속도로의 통행료를 내는 방법도 비대면이 정착된 지 오래됐다.
이처럼 ‘클릭’ 한 번이면 이동의 자유는 물론, 경제활동까지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삼성페이가 부러웠던 애플 유저들도 이젠 애플페이로 편의점 이마트, 스타벅스를 비롯해 SPC 계열사와 항공권 결제까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간편결제서비스 이용자는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발표한 ‘2022 인터넷 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이용률은 감소한 반면, 간편결제와 인터넷 뱅킹 이용률은 늘었다. 신용카드의 경우 2019년 73.0%의 이용률에서 2022년 63.8%로 9.2%포인트 줄었고, 체크카드는 2019년 36.6%에서 2022년에는 10.2%포인트 줄어든 26.4%로 집계됐다. 그러나 간편결제서비스 이용률은 2019년 39.6%에서 2022년 56.1%로 16.5%포인트 증가했고, 인터넷 뱅킹은 2019년 64.9%에서 2022년 79.2%로 14.3%포인트 늘었다.
바야흐로 ‘현금’이 사라진 세상이 온 것이다. 현금이 없는 사회의 이점은 뭘까. 우선 해마다 사회적 문제로 지적됐던 ‘위조지폐’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에 신고된 위조지폐는 총 150장으로 전년(176장) 대비 14.8% 감소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공표한 19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위조지폐가 줄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비현금 지급수단 이용 활성화에 따른 대면 상거래가 축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폐 발견 장수를 살펴보면, 5000원권과 1000원권을 중심으로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지폐가 눈에 띄게 줄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적 손실도 예방할 수 있다. 아무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현금 거래는 약간의 오차가 발생할 수 있는데, 디지털 거래는 정확하게 계산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이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또, ATM기를 설치하거나, 통장을 만드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환경에도 도움을 준다. 종이, 구리, 아연, 니켈과 같은 천연자원으로 제작되는 현금은 재활용이 안 되거나 재생이 불가한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범죄 예방효과도 있다. 디지털 결제는 그 안에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지출 명세가 명확하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도 많은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디지털 결제로 결제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안전하다. 문제가 생기면 환불도 쉽게 이뤄진다. 위생적으로도 좋다. 몇십만명의 손을 거쳐 돌아왔을지 모르는 현금을 만질 때의 그 찝찝함은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것이다. 특히 이물질이 묻어 있거나 찢어진 지폐만큼 자원 낭비도 없다.
하지만, ‘현금 없는 세상’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국내 간편결제서비스 이용률을 살펴보면 연령층이 높을수록, 소득층이 낮을수록 서비스 이용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알게 모르게 사회적 불평등이 초래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은행의 ‘2021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 서비스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개월 내 모바일결제 서비스 이용 경험이 있는 비율은 조사대상자의 58.0%로 나타났다. 연령대는 20~40대가 주를 이뤘다. 소득수준은 높을수록 모바일결제 서비스 이용률이 늘었다. 1000만원 미만과 1000~3000만원의 소득에서는 각각 34.3%, 31.3%로 이용률을 보였지만, 3000~5000만원의 소득에서는 60.1%, 5000~7000만원 소득에서는 68.0%, 7000만원 이상의 소득에서는 74.2%의 이용률을 보였다.
간편결제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로 지급수단을 실물로 갖고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외에 ▲앱 구성 및 절차가 편리해서 ▲제공 혜택이 좋아서 ▲할인이나 적립 등 혜택이 좋아서라는 이유가 다수를 차지했다. 즉, 디지털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이나 디지털 취약계층은 디지털 시스템이 주는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 간선(지선)노선 버스의 경우 카드를 사용하면 1200원이지만, 현금을 사용하면 1300원으로 100원 더 비싸다. 광역버스와 마을버스도 현금이 100원씩 더 비싸다.
개인정보 보안에 대한 문제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소비자의 금융거래 명세가 공개되기 때문에 금융기관에서는 감시가 가능해진다. 투명성 측면에서는 좋을지 몰라도 개인정보를 기관에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프라이버시 측면에서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간편결제서비스와 관련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사고 책임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사고 예방 등을 위해 관련 부처의 제도적 보완은 물론, 소비자 보호 강화 및 보안기술 개발 등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다수의 소비자는 간편결제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삶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데 동의한다. 그만큼 관련 기술은 더욱 발전할 것이고, 편리성은 더 증대될 것이다. 다만, 이런 서비스를 사용하지 못하는 취약계층까지 품을 수 있을 때 포용력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디지털 기술에 취약한 노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불편한 세상은 없다. 버스만 타더라도 현금이나 선불카드를 사용하는 비중이 높은데, 간혹 선불카드의 잔액이 부족할 경우 계좌이체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지급방식에 금세 포기하고 현금 결제가 가능한 버스가 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노인들이 많다. 이들은 은행지점과 AMA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조차 불안하다. 은행 역시 통장으로 하나하나 입출금 명세를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노인들을 위해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비단 노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에게도 불편함은 마찬가지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공항버스 이용객은 약 34만명으로 전년 동월대비 약 1600% 상승했다. 외국인 관광택시도 이용 건수가 늘었다. 2022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수송을 재개한 이후 9개월 만에 무려 이용실적이 2만5095건을 기록했다. 하지만, 많은 외국인이 지하철에 비치된 교통카드 발급기 앞에서 시간을 지체한다.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다. 일례로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노인들을 위해 교통카드 구매처를 확대하는 등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카드 안에 교통카드 기능을 안내하고, 키오스크 사용법을 교육하는 등 디지털 격차 문제로 일상의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수익이 중요한 민간기업에만 자율적으로 맡겨두면 공공성은 훼손되기 마련이다. 간편결제서비스 시장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책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비스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도 살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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