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질서 구축은 경제적 강자인 갑의 지위남용을 방지하고, 경제적 약자인 을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가맹점주와 대리점주, 중소기업과 협동조합, 플랫폼과 대형마트·쇼핑몰 입점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이 단체를 결성해, 대기업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동주 의원(기본사회위원회 공동본부장)은 더불어민주당 기본사회위원회가 11일 개최한 ‘대중소기업 상호대등한 교섭권 보장 토론회’에서 ‘경제민주화와 乙(을)기본권’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국민 모두가 성장에서 도태되지 않고 그 과실을 공정하게 누리는 모두의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 가치를 관철하는 기본권이 도입돼야 한다”며,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대등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단체구성권과 교섭권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제활동 성과가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민주화는 2012년 18대 대선 화두였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당선된 박근혜 정부는 당선 후 경제민주화를 배제했고, 이에 야권과 시민사회는 활발한 경제민주화 입법활동을 벌였다.
가맹본사의 불공정 행위가 잇달아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면서, 2013년 가맹점주의 단체구성권과 교섭권을 명시한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소상공인 단체구성권과 교섭권에 대한 논의는 2013년 남양유업의 물량 밀어내기 등 갑질 사태가 불거지면서 부각됐다. 또, 2015년 카드수수료 인하 운동이 본격화되며 대형가맹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수수료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중소가맹점들이 단체협상권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이동주 의원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단체구성권과 교섭권에 관한 논의에서, 반대논리의 핵심은 ‘자영업자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ILO협약과 국제법에서도 근로자를 ‘employee(피고용인)’가 아닌 ‘worker’로 구분하고 있다. 즉 근로자는 취업자가 아니라 근로(노동)로 삶을 영위하는 자를 뜻하고, 넓은 의미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도 여기에 포함한다는 것이 이 의원의 설명이다.
가맹점법·대리점법·대규모유통업법…단체교섭권 논의
현재 소상공인·자영업자 단체구성권과 교섭권에 대한 논의는 가맹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과 대리점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가맹본부 혐의 거부에 대응책 없다=2013년 가맹점의 단체구성권과 협의권을 부여하는 법적 근거가 담긴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하지만 현행법에서는 가맹본부가 가맹점단체의 대표성을 문제삼아 협상에 임하지 않는 등 협의 요구를 거부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벌어져, 법률에서 규정된 단체구성 및 협의 요청권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실정이다.
이동주 의원은 현행법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가맹점단체가 설립되면 공정위에 신고하도록 하고, 가맹점단체가 가맹본부에 협의를 요청하는 경우 10일 이내 협의를 개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가맹본부가 협의요청을 받았음에도 정당한 사유없이 협의를 거부하거나 게을리 하는 것을 금지하고 협의한 사항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공정위가 가맹점단체의 설립인원 등을 공인해주도록 함으로써 단체의 법적지위 및 협상력이 제고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사업자단체의 현황을 공정위에서 파악하게 됨으로써 각종 정책수립 및 집행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리점 단체협상권 부정하는 공정위=2013년 남양유업 대리점 갑질 사태가 촉발된 직후, 남양유업은 2020년이 돼서야 대리점단체에 협상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법률상에서 대리점 단체협상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공정위가 대리점 단체구성권은 동의하고 있지만, 협의권 보장에는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공급업자와 대리점간 거래조건의 협상이 가격의 집단적인 조정, 영업지역 분할 등의 내용을 포함하게 되는 경우, 담합 등 경쟁제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대리점단체 협상권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도 공정위가 하림그룹 계열사 제일사료의 연체이자 책임을 대리점에 전가한 행위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공급업자의 갑질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협상력이 약한 대리점에 대한 단체구성권과 협상권을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유통환경 변화가 가져온 사각지대=복합쇼핑몰, 백화점, 대형마트, 아웃렛, 대형전문점 등 대규모점포의 유형이 다양해지고 계약당사자 간 계약형태도 복잡해지면서, 기존의 법체계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불공정 사각지대도 늘어나고 있다.
복합쇼핑몰과 직접 계약관계가 없는 중소상인은 할인판매 강요, 판촉행사비 전가 등 복합쇼핑몰의 갑질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또, 복합쇼핑몰과 백화점은 의무휴업일제가 해당되지 않아 입점업체 점주와 종사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휴식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대규모 점포와 입점 점주 간 동등한 지위를 보장하고 공정한 유통생태계가 정착될 수 있도록 대규모점포 입점점주 단체 구성 및 교섭권 보장 등 입점점주 보호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동주 의원은 “온라인 소비와 비대면 거래 확대 등 유통환경 변화의 1차적 피해자는 경제적 약자인 소상공인”이라며, “공정위는 유통대기업을 대상으로 협상력이 없어 겪는 피해를 막기 위해 입점 소상공인의 단체구성권 및 협상권 보장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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