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지역방송국 수습PD로 입사한 여성노동자에게 상급자인 보도제작국장이 성희롱 가해를 했다. 상담사례를 보면, 대개 이러한 경우 상대적으로 약자인 수습 노동자는 상급자의 가해행위를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수습 종료 후 본채용에 상급자의 평가가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상급자의 직장 내 괴롭힘 가해행위를 신고하더라도, 회사에서는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이익이 가해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다.
최근 대법원 제1부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주장한 노동자에 대해 정식채용을 거부한 지역방송국 본부장과 보도제작국장 등의 조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결(대법원 선고 2022다 273964. 2023.2.2)을 내렸다.
◇사건의 경위=원고는 2016년 지역방송국에 프로듀서로 입사해 5개월의 수습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다. 피고 B는 원고를 지휘·감독하는 해당 방송국의 보도제작국장 으로 2016년 9월과 같은 해 10월 원고에 대해 ‘성적 언동’으로 직장 내 성희롱 가해행위를 했다. 피고 D는 해당 지역방송국의 본부장으로, 피고 B와 함께 수습사원이었던 원고를 본사에서 실시되는 교육훈련에 참여시키지 않고 수습 만료 후 정식채용을 거부했다.
이에 원고는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전남지노위는 사측이 원고에 대한 본채용을 거부한 행위는 부당해고라 판정했다. 정규직으로 다시 채용하라는 전남 지노위의 결정으로 원고는 2017년 5월에 회사로 복귀했다. 그러나 후임 본부장인 피고 E는 2017년 12월31일자로 원고와의 근로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시켰다.
이에 원고는 국가인권위원회에 피고 B와 D, 그리고 방송국 본사 대표를 상대로 직장 내 성희롱 가해행위와 부당해고에 대해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원고에 대한 본채용 거부행위를 부당해고로 인정하고, 원고의 의사를 감안해 원직복직 시킬 것을 주문했다. 원고는 2019년 3월 복직 후, 피고들을 상대로 교육배제와 본채용 거부에 대해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의 쟁점=피고 B는 자신의 행위가 성희롱이 아니라 부인했고, 피고 D 등은 교육훈련에서 원고를 배제시킨 행위나 본채용을 거절한 행위가 부당해고가 아니라 주장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피고 B의 언동이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피고들이 피해 노동자인 원고에 대해 수습기간 만료 후 본채용을 거부한 행위가 남녀고용평등법에 위반한 불리한 조치인지 여부다.
◇법원의 판단=대법원은 피고 B의 행위가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고평법) 제2조는 직장 내 성희롱을 “사업주·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근로조건 및 고용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동법 제12조는 “사업주, 상급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 내 성희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정해 직장 내 성희롱을 금지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성희롱에 대한 판단기준은 동법 시행규칙 제2조에 육체적, 언어적, 시각적 행위를 기준으로 예시하고 있다.
재판부는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 또는 남녀성의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육체, 언어, 시각적 행위에 해당해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춰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행위를 ‘성적 언동’으로 정의하고, 성희롱의 성립요건을 제시한 2008년 대법원 판례(대법 2007 두 22498)를 법리로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피해자인 원고에게 피고 B가 여성의 신체적 부위를 언급하며 행한 발언은 언어적 행위로, 휴대전화 메신저에 여성의 특정 사진을 게재한 행위 등은 시각적 행위로 성적 언동에 해당하며 이는 원고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만큼 명백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재판부는 원고가 속한 지역방송국 간부들인 피고 D와 B, 그리고 E가 원고에 대해 본채용을 거부하고 해고한 행위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근로자에 대한 불리한 조치로서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인 원고에 대한 근로관계 종료 행위도 불법행위로 판단했다. 고평법 제14조의 제6항은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 등에게 해고나 징계, 집단 따돌림, 폭언, 그 밖에 피해근로자의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우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동법 제37조 제2항의 벌칙조항에 따라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형사처벌과 별개로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피해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 이는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가 돼 피해 근로자에 대해 손해배상의 책임이 발생한다.
재판부는 “지역방송국 본부장이던 피고 D와 보도제작국장 피고 B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주장한 수습사원이었던 원고를 본사에서 실시되는 교육훈련에 참여시키지 않고, 수습 만료 후 정식채용을 거부한 조치와 후임 본부장인 피고 E가 원고와의 계약기간이 끝나는 2017년 12월31일자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킨 조치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근로자에 대한 불리한 조치로서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판결의 의의=2017년 12월 대법원은 르노 삼성에서 발생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자에 대해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취한 회사의 행위를 불법행위라 판결했다. 당시 회사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 노동자에게 비전문 부서로 배치하고 직무정지 하는 등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취했다.
당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7.12.22. 선고, 2016다202947)은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가 불법행위인지 여부에 관해 그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했다.
판례는 피해근로자 등에 대한 ‘불리한 조치’가 위법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불리한 조치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문제제기 등과 근접한 시기에 있었는지 ▲불리한 조치를 한 경위와 과정 ▲불리한 조치를 하면서 사업주가 내세운 사유가 피해근로자 등의 문제제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것인지 ▲피해근로자 등의 행위로 인한 타인의 권리나 이익침해 정도와 불리한 조치로 피해근로자 등이 입은 불이익 정도 ▲불리한 조치가 종전 관행이나 동종 사안과 비교하여 이례적이거나 차별적인 취급인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시했다.
이번 판결은 르노 삼성 판례를 근거로,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 노동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를 취하는 행위가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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