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장 특성 맞게 ‘위험요인’ 없애도록 지원을

중대재해처벌법에도 안전사고 여전…사업장 예방시스템 구축 중요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고의 원인은 다양하다. 하지만, 사고가 일어난 후 현장의 반응은 비슷하다. ‘운이 나빠서 우리 사업장에서 사고가 났다’, ‘하필 우리 회사에서 사고가 나서 벌금을 문다’라는 인식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업장에서 똑같은 유형의 안전사고가 반복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이런 안전사고의 위험에 더욱 노출돼 있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환경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법 규정이 문제라고도 한다. 처벌과 강화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안전관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작은 사고들이 쌓여 결국 ‘대형 사고’로 번진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을 보면, 올 1분기 사고사망자는 128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19명 감소했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건설업에서 65명(63건), 제조업에서 31명(30건)의 사고사망자가 발생했는데, 각각 전년동기 대비 6명(1건), 20명(16건)이 감소한 것이다.

하지만, 사고사망자가 줄어든 이유는 산재 예방효과 때문이 아니다. 전반적인 경기상황이 좋지 않아 산업활동이 줄어든 것이 주된 이유라는 게 고용노동부 측의 분석이다. 문제는 사업장 규모에 따라 사고비율 감소에도 확연히 차이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경기침체로 인해 사고사망자가 줄었다고 하지만, 50인 미만의 사업장에는 해당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고사망자는 79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같다. 건수로 따지면, 작년 77건에서 올해 76건으로 1건 감소했을 뿐이다.

사고유형도 매년 반복되는 사고가 대부분이다. 떨어짐, 부딪힘은 전년동기 대비 감소했지만, ▲물체에 맞음 ▲끼임 ▲깔림 및 뒤집힘 사고는 전년동기 대비 각각 63.6%, 23.1%, 175% 증가했다.

여전히 사업장에서는 이런 후진적 사고유형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끼임 사망사고’ 사례만 보더라도 ▲위험설비에 손이나 옷 등이 끼이지 않도록 덮개 등 방호장치를 설치하거나 ▲기계를 정비할 때 전원을 차단한 후 전원장치를 잠그고 정비 중이라고 안내하는 ‘정비 중 운전정지(LOTO, Lock Out Tag Out)’ 같은 표지를 붙이는 기본적인 조치만 해도 막을 수 있다.

내년부터 50인 미만 기업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이처럼 끊이지 않는 산재 사망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생긴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법인과 별도로 사업주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음으로써 사업주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한 목적이 크다. 2022년부터 50인 이상 기업에 적용하고 있고, 내년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까지 확대 시행된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중소기업에서는 관련 인식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5인 이상 기업 1035곳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한 기업 인식도 조사’를 한 결과, 중소기업의 65.6%가 중대재해처벌법 의무사항을 잘 모르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77%의 중소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대응 여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로는 전문인력 부족(47.6%), 법률 자체의 불명확성(25.2%), 과도한 비용 부담(24.9%)이라고 했다.

전문가는 이런 중소기업의 반응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우송대학교 소방안전학부 이동경 교수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포괄적”이라며, “기업이 지켜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내용을 중심으로 명확하게 정리한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사업자와 경영책임자에게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인력·예산 등을 마련해야 하고, 안전 보건상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위험 상황을 파악해서 관리하고 조치해야 하는데 이런 의무 사항과 이행 내용이 포괄적으로 적혀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규정을 보면 경영자 리더십 등 경영자가 적극적으로 안전관리에 참여하게 돼 있다. 하지만, 경영자가 어디까지 참여해야 하고, 어떤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는지, 또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등 기업체별로 모델을 구체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또한, 정부가 내세운 가이드라인이 중소기업에서 ‘자율점검’을 할 수 있도록 제시는 하고 있지만, 그런 내용들도 주관적인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이동경 교수는 “교육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한다면 몇 시간 해야 하는지 등 세부계획을 세우는 일조차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까다롭고 복잡한 법 규정으로 인해 안전 확보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보다는 서류화 작업에 공을 들이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대기업에서는 외주를 주기도 하지만,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전문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인해 외주를 주는 것도 쉽지 않다. 따라서 위험성 평가를 위한 서류 양식조차 만들어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기업들이 꽤 많다는 것이다.

이동경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업장에서는 면피용으로 서류작업에 더 많은 준비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예를 들어 위험성 평가나 근골격계부담작업 유해요인조사와 같은 서류를 일반기업에서 실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사 수행했다 하더라도 서류작업과 사업장 안에서 산재를 예방하는 것과 일치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이유는 기업에서 형식적으로 이런 작업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현장의 위험요소를 찾아 제거하기보다는 서류를 갖추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경우가 꽤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소기업에서 좀 더 쉽게 안전관리를 할 수 있는 툴을 만들 필요가 있고, 사업장 스스로 현장의 안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실질적인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소규모 사업장에 컨설팅 진행실효성은?

따라서 정부는 좀 더 명확하게 의무사항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또 인적·재정적으로 부족한 중소기업의 상황을 고려해, 전문인력 인건비와 시설개선비와 같은 정부 지원 확대를 고려해야 한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올해 말까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을 진행한다. 작년에 처음 도입했는데 올해는 대폭 확대해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지원과 한 관계자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작년에는 2249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했는데, 올해는 1만6000개소를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신청을 한 기업을 중심으로 하고, 필요할 경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위험사업장 중심으로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교육기간은 보통 3개월이며 한 사업장당 5회 방문한다. 단, 본사와 현장이 나뉘어 있는 건설업 특성상 건설업은 8회 방문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교육내용을 살펴보면, 1회차에서는 위험요인 발굴, 위험요인에 대한 제거 통제 안내 등 위험성 평가 중심으로 컨설팅이 이뤄진다. 2회차에서는 심화평가로 들어간다. 3회차 때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방법과 1~2차 컨설팅에서 실시했던 위험 점검이행현황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위험요인 파악 ▲위험요인 제거·대체 및 통제 ▲경영자 리더십 ▲근로자 참여 ▲비상조치 계획 수립 ▲도급·용역·위탁 시 안전보건 확보 ▲전사적 안전보건 평가 및 개선 등을 진행한다. 4회차 역시 3회차에서 진행했던 7가지 위험성 평가요소에 대해 컨설팅하고, 추가적인 위험요인도 발굴하면서 이행사항을 점검한다. 5회차 때는 CEO 면담 등을 통해 총평하고, 평가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작년에 컨설팅을 받았던 기업은 대부분 만족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작년 컨설팅을 진행한 후 설문조사한 결과, 최고경영자 안전의식이 향상됐고, 산재 예방에 도움이 됐다는 의견이 각각 87.7%, 81.5%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산재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대응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위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동시에 소규모 사업장이 어려워하는 위험성 평가와 같은 서류작업을 쉽게 할 방법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우송대학교 소방안전학부 이동경 교수는 “법을 운용하고 관리하는 정부기관에서는 무조건 까다롭게 해야 재해를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현장의 근로자나 관리감독자들이 안전관리를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살필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기업이 사업장 특성에 걸맞은 위험요인을 찾아 제거할 수 있는 기반을 정부가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컨설팅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이 법을 지키기 어려워하는 부분과 그 이유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동경 교수는 무엇보다 “기업에서 일어나는 산업재해가 예방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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