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동의 없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효력은

추상적인 ‘사회통념상 합리성’ 있다면 유효하다는 기존 판례 변경 

 

사용자는 경영권에 근거해, 노동자의 복무규율이나 근로조건 기준을 통일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취업규칙을 만든다. 인사규정, 임금규정 등은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모두 취업규칙에 해당한다. 

취업규칙은 영원불변의 규정이 아니다. 사회경제적 변화나 경영방침의 변화 등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문제는 회사가 마음대로 취업규칙을 바꾸도록 내버려 두면, 근로조건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회사에 종속돼 일하는 노동자의 현실을 고려해 실질적으로 불평등한 노동자의 입장을 보호·강화하기 위한 취지다. 이를 지키지 않고 회사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기존에 비해 불이익 하게 변경했다면 그 효력은 부정된다.

그런데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관한 분쟁 사안에서 대법원은 1978년부터 법률 어디에도 명문화 되지 않은 추상적 개념인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들어 사용자의 일방적 취업규칙 변경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때문에 1989년 개정돼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 요건을 명시한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을 무력화시키는 해석이란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현대자동차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면서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지 않아 그 효력이 문제된 사건에 대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로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따른 동의조항의 적용을 배제한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대법원 2023. 5.11. 선고 전원합의체 판결 2017다35588, 2017다35595(병합)]

사건의 경위와 쟁점=피고는 현대자동차이고, 원고는 피고의 회사에 재직했던 과장급 이상 노동자들이다. 피고는 2004년 7월 주 40시간제의 시행에 따라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취업규칙을 별도로 제정했다. 핵심 내용은 종전 취업규칙과 달리 월 개근 근로자에게 부여하던 월차휴가를 폐지하고, 2년마다 늘어나는 연차휴가 가산일수를 25일로 제한한 것이다.

피고는 해당 취업규칙의 내용을 변경할 당시, 과반수가 가입한 현대차 노조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 다만, 피고는 2004년 8월 지역본부별, 부서별로 간부사원들을 모아 전체 간부사원 6683명 중 약 89%에 해당하는 5958명으로부터 동의서를 받았다. 이에 원고 노동자들은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 부분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종전 취업규칙에 따라 계산한 연월차휴가수당에서 피고가 지급한 연월차휴가수당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지급하라고 피고 회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피고는 주 40일 근무제 도입으로 월차 유급휴가가 폐지되고, 연차휴가 일수가 최대 25일로 상한이 정해지는 등 법 개정의 취지에 따라 취업규칙을 변경했으며, 간부사원의 감소된 연월차휴가수당 상당액을 2005년 10월경 기본급 인상으로 보전하려고 했다는 취지로 취업규칙 변경의 합리성을 주장했다.

사건의 쟁점은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하면서,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가 요구하는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따른 동의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유효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여부다.

원심[서울고등법원 2017. 7.21. 선고 2015나31898, 2015나31904(병합) 판결]은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 부분이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에 해당하는데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지 않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도 인정되지 않으므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판단=종전 대법원 판례는 이와 유사한 사안에서 불리하게 변경된 취업규칙 조항의 법적 규범성을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종전 근로조건 또는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방법에 의한 동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적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해석했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기준으로는 취업규칙의 변경에 의해 근로자가 입게 될 불이익의 정도, 사용자 측의 변경 필요성의 내용과 정도, 변경 후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대상조치 등 관련된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상황, 노동조합 등과의 교섭경위 및 노동조합이나 다른 근로자의 대응, 동종 사항에 관한 국내의 일반적인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판단해야 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번 대법 전합 판결(다수의견)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한 종전 판례에 대해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 단서의 명문 규정에 반하는 해석일 뿐만 아니라 근로기준법이 예정한 범위를 넘어 사용자에게 근로조건의 일방적인 변경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헌법 정신과 근로자의 권익 보장에 관한 근로기준법의 근본 취지,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대법 전합 다수의견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의 문제를 꼬집었다. “개념 자체가 매우 불확정적이어서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법적 규범성을 시인할 수 있는지, 노동관계 당사자가 쉽게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개별 사건에서 다툼의 대상이 되었을 때 그 인정 여부의 기준으로 대법원이 제시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법원의 판단 역시 사후적 평가일 수밖에 없는 점”을 한계로 짚었다.

또한 대법 전합 다수의견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이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을 실현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절차적 권리”라는 점을 강조하며, “변경되는 취업규칙의 내용이 갖는 타당성이나 합리성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전합 다수의견은 노조나 근로자들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있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가 없더라도 그 효력은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의 기존 대법원 판례의 태도는 유지했다. 나아가 전합 다수의견은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집단적 동의권을 남용한 경우’에 대해 ▲관계 법령이나 근로관계를 둘러싼 사회 환경의 변화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인정되고 ▲나아가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를 구하고자 하는 사용자의 진지한 설득과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합리적 근거나 이유 제시 없이 취업규칙의 변경에 반대하였다는 등의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시했다.

다수의견은 이러한 기준에 따라 원심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은 배제하고, 노조의 집단적 동의권 남용 여부를 기준으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효력을 판단해야 하는데, 원심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를 적용해 간부사원 취업규칙 중 연월차휴가 부분의 효력을 판단했을 뿐, 노동조합의 부동의가 집단적 동의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해 전혀 판단하지 않았으므로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환송했다.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해 일부 대법관은 별개의견을 통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는 그동안 사례가 축적되어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확보되어 있고 오랜 기간 판례 법리로 타당성을 인정받아 사회일반의 신뢰가 구축되어 있으므로 종전 판례를 변경할 필요성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한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집단적 동의권 남용 법리에 대해서도 “그 판단기준이 불명확하고, 그것이 사회통념상 합리성 법리와 비교하여 결과적으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했다.

판결의 의의=이로써 사용자가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해 근로자에게 기존보다 불리하게 근로조건을 변경했더라도 해당 취업규칙의 변경에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유효하다는 취지의 종전 판례는 대법 전합의 이번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모두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그 동안 노동현장에서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두고 벌어진 노사간의 분쟁에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개념은 매우 추상적이어서 어느 정도가 돼야 그 정당성이 있는지 법원의 사후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번 대법 전합 다수의견이 지적한대로 취업규칙 변경의 효력을 둘러싼 분쟁은 계속되고 그 효력이 확정되지 않은 취업규칙이 적용되며, 법적인 불안정성은 사용자나 근로자의 몫이었다.

대법 전합의 이번 판결은 근로조건의 노사대등결정 원칙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입법자가 근로기준법에 정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의 요건을 구체화한 해석으로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에 기여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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